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대한성공회 부산교구 (문단 편집) == 여담 == * 대한성공회 최초의 주교인 [[찰스 존 코프]] 주교[* 한국명 고요한, 영국성공회 파송]가 1890년 [[인천광역시|인천시]] 제물포에 발을 내딛기 전이었던 1880년에 이미 캐나다성공회 소속이면서 일본성공회의 개척자였던 알렉산더 크로프트 쇼(Alexander Croft Shaw, [[1846년]] [[6월 26일]] ~ [[1902년]] [[3월 13일]]) 신부가 부산에 교회를 세워 사목 하고 있었고, 중국에서 사역하고 있던 존 리처드 울프(John Richard Wolfe) 신부도 부산에서 선교를 한 바 있다. 이후 부산을 비롯한 영남 지역은 자연스럽게 서울에 있는 주교[* 당시 한국성공회는 [[성공회 한국교구|성공회 캔터베리관구 한국교구]]로써, 단일교구였다.]의 치리 하에 들어가게 되었다. * 대한성공회 최초의 여성 사제를 배출한 교구이다. 주인공은 민병옥 카타리나 신부. 민 신부는 1978년에 성공회 신학교를 졸업했으나, 당시에 여성은 서품을 받을 수 없었기 때문에 오랫동안 [[전도사]] 직분에만 머물렀고, 23년이 지난 2001년에야 사제서품을 받았다. 이후 그는 10년간 사제로서 사목활동을 하다가 2011년에 은퇴했다. * 대한성공회 내에서 상대적으로 [[저교회]]·[[복음주의]] 성향을 많이 띠는 교구다. 대한성공회 내에서 1970년대 말부터 시작된 변화에서 부산교구는 상대적으로 저교회파·복음주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. 서울교구와 대전교구에서는 성당에서 [[통성기도]]나 방언기도를 하는 모습을 보기가 쉽지 않은데, 이곳 부산교구의 성당들은 종종 하는 편이다. 또한 흔한 일은 아니지만 평신도가 주교의 관면을 받아 감사성찬례에서 설교를 하기도 한다.[* 1999년 시험 예식서에서 처음으로 도입된 것으로, 대한성공회가 앵글로-가톨릭 혹은 [[고교회]] 일색이었던 시절에는 불가능한 일이었다. 사실 1999년 시험 예식서에서는 아예 주교의 관면조차 없이 평신도가 설교할 수 있도록 허용하였다.] * 2020년 교구의회에서 교구문장이 기존의 문장[* [[파일:부산교구.jpg|height=250]]]에서 새 문장[* [[파일:대한성공회 부산교구.jpg|height=250]]]으로 변경되었다. * [[대구성당]]은 벽제대 등 고교회적 영향이 남아있으면서도 전임 관할신부가 [[복음주의]]적 강론을 해서 어느 정도 이름이 알려져 있었으며, 이는 기독교계 언론에 소개된 적도 있었다. * 현재 부산교구는 [[일본]]성공회 오키나와 교구 및 규슈 교구와 자매결연을 맺고 활발히 교류하고 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